중국, 동남아시아, 중동에서 활약하는 아홉 명의 한국인이 연사로 나선 ‘아시아의 한국인‘이 10월 29일 네이버 디투스타트업팩토리(D2SF)에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열렸다.
이날 동남아시아 세션에서는 필리핀에서 기프티콘 서비스 스타트업 ‘쉐어트리츠’를 운영하고 있는 이홍배 대표가 나서 동남아시아와 필리핀 동향 및 현지 진출 전략을 경험에 근거해 조언했다.
쉐어트리츠는 필리핀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선물 구매 및 전달의 불편함을 해소함과 동시에, 독특한 선물하기 컨셉으로 스티커와 인사말을 보낼 수 있도록 디지틸 패키징으로 어필해 지명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 사례로 설명하자면, 과거 ‘기프티콘’, 근래 ‘카카오 선물하기’를 생각하면 된다.
또한 젊은 유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매시징앱 바이버(Viber)와 월렛 서비스 페이마야(PayMaya)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주효했다. 이를 통해 9월기준 월 거래 수 30만 건을 넘겼다.
쉐어트리츠의 강점은 동남아에 최적화된 결제시스템에 있다. 일반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평균 신용카드/은행계좌 보급률은25% 미만으로, 온라인결제를 필수요건으로 하는 e커머스는 상위 일부 유저만을 위한 서비스로 간주되어 왔다. 쉐어트리츠는 이러한 점에 주목해, 선불휴대폰 및 월렛 결제를 필리핀 최초로 커머스에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쉐어트리츠는 가능성과성장성을 인정받아 올해 40억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회사는 필리핀에 이어 내년 인도네시아, 이후 필리핀까지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하 필리핀 이홍배 대표의 강연내용 정리.
“동남아의 열악한 환경이 사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는 인터넷이 랜드라인(landline)으로 성장한게 아니고 모바일로 성장했다. 한국처럼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고 이용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는 구조이다. 그런 환경이기에 국내처럼 서비스를 무겁게 만들면 로딩도 느려지고 UX도 어그러진다. 때문에 최대한 서비스를 간편하고 심플하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동남아에서의 서비스를 제공할 때 가장 큰 제약은 결제다. 싱가폴을 제외한 동남아에서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다. 은행계좌를 가진 유저 수는 평균 25%, 높은 국가가 30% 수준이다. 즉, 70%에 달하는 인구는 온라인 서비스를 쓸 수 없다는 의미이다. 세간에서 동남아를 평할 때 ‘사업가능성과 구매력이 낮다’,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결제 수단이 없어 서비스를 이용 못 하는 70%의 인구를 공략할 수 있다면 꽤 좋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서비스 중에 동남아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이라 평가받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라자다의 예를 들어보자. 라자다가 설립될 당시 동남아는 이커머스는 이렇다할 강자가 없었다. 라자다는 알리바바를 비롯한 글로벌 VC로부터 투자를 받아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가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핵심에는 늘 결제수단이 있었다. 여타 이커머스가 신용카드 등 기존 결제 수단을 고수하고 있을 때 라자다가 시행한 것이 COD(Cash On Delivery, 현금 후불 결제)다. 은행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구매자도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인데, 물건을 구입하면 배송기사가 물건을 가져다주며 그 자리에서 수금하는 형태다. 우리에게 낮선 방식이지만, 라자다는 그걸로 시장을 선점했다.
내가 필리핀에서 창업하게 된 계기는 이곳의 발달하지 않은 모바일 상황에서 미래의 기회를 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성공한 모델을 동남아에서 빠르게 로컬화를 한다면 사업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결제수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로컬 페이서비스, 휴대폰 결제 서비스와 연동했다. 선불폰이나 페이폰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슬로건을 ‘누구나 선물을 보낼 수 있다’로 했다. 상위 30%가 아니라 전체 국민 누구나 결제 수단에 연연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현재 쉐어트리츠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2차 사업 국가는 인도네시아, 그 다음으로 베트남를 고려하고 있다. 3개국 인구는 무려 5억에 달하고 스마트폰 보급률은 40%다. 타켓 유저층은 2억 명의 인구인 셈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에 타겟 유저 수도 늘어날거라 본다. 2~3년 안에 5~60%까지 스마트폰 보급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타겟 유저는 3억 명에 달한다.
“우리는 동남아를 얼마나 알고 있나”
동남아를 ‘후진국이다’, ‘위험하다’, ‘구매력이 낮다’, ‘국민의식 수준이 낮다’. ‘사업하기 힘들다’, ‘부정부패가 많다’ 라고 보는 시선이 있다. 개선되고는 있지만 크게 틀리지도 않다. 하지만 사업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가 관건일 뿐이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투자자들도 동남아를 눈여겨 보고 있다. 이커머스 1, 2위 기업인 ‘라자다’와 ‘셔피’, O2O서비스라 할 수 있는 ‘그랩’과 ‘푸드판다’, ‘어니스트비’, ‘라라무브’ 등이 글로벌 VC의 대규모 투자를 발판으로 크게 성장했다. 글로벌 VC들은 대체적으로 한 국가가 아니라 동남아를 연합으로 묶어서 네트워크 형태로 투자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동남아시아 10개국 중 인구수 1위인 인도네시아(2억 7천만 명)는 근래 가장 주목받는 국가이다. 근래 글로벌 VC들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추세이다. 소프트뱅크가 이커머스 1위 마켓플레이스 업체인 ‘토코피디아’에만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했다. 그런 대규모 투자를 할만한 시장이 된 것이다.
시장성에서 2위권으로는 필리핀과 베트남을 들 수 있다. 둘다 인구 1억 이상에 GDP는 동남아 상위권인 3000달러 수준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현재보다는 앞으로 성장할 기회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은 중국 양대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이커머스와 핀테크 영역에 투자하고 있다. 점차 동남아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다.
“필리핀은 생각 외로 글로벌 사업하기에 좋은 곳이다”
카지노, 여행, 인력거, 두테르테 등 필리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뉴스에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내가 보는 필리핀은 조금 다르다. 도시 위주로 보자면, 높은 빌딩 위주로 잘 꾸며져 있고 24시간 내내 밝다.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다. 대졸자 등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영어를 사업적으로도 잘 활용한다. 때문에 가장 발달된 산업군은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업무처리 아웃소싱)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콜센터 등 서포팅 조직이 필리핀에 다수 존재한다. 밤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24시간 오픈되어 있는 상점도 많다. 젊은 인구도 많고, 사업도 24시간 건강하게 돌아가는 사회라고 본다. 스마트폰 결제도 가능하기에 많은 해외 스타트업이 진출해서 사업과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쉐어트리츠가 탄생하기까지 담금질 기간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사업을 필리핀에서 하고 있다. 무작정 와서 한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백그라운드가 만들어지는 기간이 있었다.
나는 2010년에 동남아에 모바일 부가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액세스모바일)에 조인해서 사업에 참여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2년 정도 사업 경험을 한 뒤에 2012년에 필리핀을 담당했다. 시장의 변화를 보며 그 다음에 회사가 만들어야 할 서비스를 고민했다. 그런 경험과 시장 성공 포인트를 결합해 생각한 것이 모바일 커머스, 모바일 선물하기 서비스였다.
바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2년간 사내 인큐베이션 기간이 있었다. 그때 빠른 실행과 검증을 거쳐 2917년 스핀오프(분사)를 해서 창업을 했다.
“동남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동남아에서 10년 간 있었으니 짧은 기간은 아니다. 현지 사업도 어느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지인처럼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내가 늘 염두에 두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현지인처럼 생각’하고, ‘현지인 문화에 맞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그 부분이 본인에게 부족하다면 현지 조직을 만들어서라도 로컬라이징을 해야한다.
또 동남아에서 사업을 한다면 본인이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고 체크해야 한다. 남들의 이야기만 듣고 사업 방향을 판단하면 낭패를 맞을 수 있다.
동남아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이 나라들은 한국 기업이 느끼기에 속도가 느리다. 우리보다 3~4배 기간을 잡고 일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3개월짜리 프로젝트라면 현지에서는 1년을 잡는게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제대로 관리하느냐다.
“리소스, 자본, 시간 모두 충분하지 않은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리소스, 자본, 시간 모두 부족했다. 주어진 시간이 2년이라 보고, 우선 시장 변화를 살폈다. 가장 중요한 흐름은 헌지 스마트폰 사용자 수와 데이터 활용 유저가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들어온 뒤 관련 서비스가 생긴게 2009년 이후라면, 필리핀은 2014년이 시작이다. 그때부터 어느순간 앱서비스들이 활발히 나오고 성공사례도 등장했다. 그때 개인적으로 주목한 것이 그랩이다.
사실 나는 그랩이 동남아시아에서 성공 못 할거라 봤다. 그랩이 등장할 당시 동남아 스마트폰 유저는 20%이하였고, 데이터가 항상 켜져있어야 한다는 환경적 제약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랩은 수요를 공급이 다 커버하지 못 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빠른 실행과 시장에서의 검증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랩의 사례를 보며 우리도 그 부분에 집중했다. 빠른 실행을 통해 주어진 시간에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검증을 했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의 과제라고 본다.
“사업은 쉬운게 없다”
사업을 하면서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지역에서 10년이라는 경험이 있었지만, 지난 2년 간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았다. 처음에 파트너십을 맺으러 여러 기업에 갔을 때 반응도 미미했고, 파트너들의 속도도 느렸고, 직원 채용도 어려웠다.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여기까지 왔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았던 하나는 ‘서비스 가치’였다. 내가 직장인 관점이었다면 다른 KPI를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창업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얼마의 기간이 걸리더라도 해결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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