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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획자 박민선 – 워크넷

무대 뒤의 숨은 땀방울

공연기획자 박민선 (CJ E&M 공연사업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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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박민선

뮤지컬, 연극, 발레 등 우리나라의 공연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공연기획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공연기획자는 공연을 기획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출, 안무, 음악, 무대, 조명, 의상, 분장 등 모든 분야를 꿰뚫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공연기획자 박민선은 뮤지컬 킹키부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보디가드 등 우리나라의 굵직한 공연을 진두지휘했다.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숨은 땀방울을 흘렸던 그녀가 공연 기획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들려주었다.

박민선 공연기획자는 학창시절, 다재다능하고 도전정신이 충만한 왈가닥에 공부도 잘 했다고 회고한다. 활달한 성격에 특히 글쓰기를 좋아해 막연하게 기자나 피디 같은 직업을 꿈꾸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문득 연극연출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 틈에서 콤플렉스를 느꼈어요.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죠. 내가 가지고 있었던 내 존재의 크기가 실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2학년 1학기 때는 C 하나 빼고 모두 F학점을 맞을 정도였다. “부끄럽지만 제 과거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들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거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졸업 후 연출이 아닌 행정 쪽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다. “97년도에 극단 기획팀에 들어가 6개월은 무급, 6개월은 월 30만원 받는 인턴사원으로 근무했어요.” 그 후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 홍보팀장, 의정부 음악국 축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그녀는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된다. “동숭 아트센터에 공채로 합격했어요. 동숭아트센터는 그 당시 대학로에서 가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극장이었기 때문에 공연기획자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기획한 소극장 공연이 연달아 매진되면서 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되자 제작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서른두 살에, 굉장히 늦은 나이죠. 멀리 길게 가기 위해서는 공연의 메카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시장에 대해서 알아야겠고, 전문가로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오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사리 2년 만에 런던대학교 문화창조산업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귀국하여 2007년 대형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CJ E&M에 입사, 제작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뮤지컬이나 연극 등 최신의 것들이 나오는 런던에서 다양한 공연을 많이 접했던 경험이 오늘 제가 일을 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고요. 뭐든지 혼자 해결해야 하는 유학생활을 통해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면서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입사 후 10년, 이제 박민선 공연기획자는 신규콘텐츠 기획 개발은 물론, 중국, 영국, 일본, 미국과의 공동 제작 및 투자사업을 진행하며 콘서트, 연극, 무용, 뮤지컬 제작을 총괄하는 공연사업본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제 삶에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것은 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던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공연기획자란 공연의 모든 과정에 개입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무슨 공연을 언제,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투자와 대상 관객까지 모든 부분을 총괄한다. “스태프를 구성하고 배우 캐스팅, 홍보, 마케팅, 세일즈 등이 모두 기획일이죠. 짧게는 1년 정도 소요되지만 기획창작물은 4~5년씩도 걸리기도 해요.”

작품과 기획을 총괄하고 다양한 스태프들을 이끌려면 특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공연기획자로서 성공한 그녀는 “우선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존중해줘야 해요. 그리고 우리가 향한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면 그들의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의사결정을 내려줘야 하죠.”라고 말한다.

기획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관객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너무 앞서가거나 어려워 관객이 공감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녀는 관객의 입장으로 스태프들을 설득한다. “공연에 대중의 관점을 입혀줘야 하는 자리죠. 뮤지컬과 같은 대중 공연이란 예술가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예술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관객들과 공감하고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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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 E&M, 킹키부츠 한 장면

특히 뮤지컬은 대중화된 작품들이다. 좋은 뮤지컬은 25년이 되도록 꾸준히 인기를 끈다. “십대부터 육십 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오래가죠. 그러려면 인간의 본성을 건드려야 해요. 그 화두를 어떻게 잘 잡는가가 어려운 거 같아요.”

투자나 후원을 받으려면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 역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성공적인 투자를 받기 위해 그녀는 투자자의 성향, 기존의 투자자가 투자해서 성공한 작품, 실패한 작품을 분석해서 접근한다. “배우를 비롯해, 연출가, 아티스트, 투자자한테까지, 저희는 항상 을처럼 산다고 표현을 해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희 입장을 전달해서 그 사람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줘야하니까요.”

공연이 올라간 뒤에는 공연의 퀄리티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디테일하게 모니터링하고, 현장에서 관객의 의견을 점검 한다. 또한 홍보와 마케팅 이벤트 등 많은 일들도 공연기획자의 몫이다. “기획 업무의 제일 좋은 점은 단 하루도 심심한 날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는 거예요. 동시에 일에 대해 계속 고민하느라 퇴근 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는 점이 힘들죠.”

대한민국의 공연 수준은 그동안 놀랍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뮤지컬은 오래전 미국과 영국에서 태동 된 오페라로부터 비롯된 장르이기 때문에 여전히 노하우가 부족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창작물보다는 ‘레미제라블’, ‘노트르담드파리’ 등 영국이나 미국, 유럽 에서 히트한 유명한 작품들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곳에 가서 그들과 함께 전 세계를 상대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저희가 공동 프로듀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CJ라는 프로듀싱 컴퍼니가 믿을만하다는 걸 인지하고 투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이후에는 굉장히 많은 작품에 대해서 초청이 온다. 킹키부츠도 그렇게 미국과 공동 제작하게 되었다. “킹키부츠는 영국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에 바탕을 둔 영화였습니다. 이후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80년대 팝계의 전설이었던 신디로퍼가 음악을 맡아서 토니상을 받았죠. 아버지와 아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편견을 버린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한국적인 정서에도 맞다고 판단해 공동제작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면서 44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굉장히 기뻤죠.” 잘 될 줄 알았는데 실패한 공연도 있었다. 국내의 작은 소극장 공연 몇 가지가 그랬고, 한번은 해외에서 공동프로듀싱했던 작품들 중에 한 달 반 만에 냉정하게 폐막을 당한 적도 있었다.

박민선 본부장은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인턴으로 출발했다.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그녀처럼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커리어를 쌓아 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 직원들 중에 자원봉사로 시작했다가 저희 회사로 들어온 친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 굳이 관련 전공을 할 필요는 없다. 문학이나 경영을 전공해도 괜찮다. 공연만 정말 좋아하다면 오히려 다른 전공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박민선 공연기획자는 요즘 면접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스팩을 갖춘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을 평생을 업으로 삼으려면 공연을 정말 좋아해야 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스팩 쌓기보다는 영화, 책, 공연 등을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물론 공연기획자에게 적합한 성향은 따로 있다. “기획은 옆으로 펼치는 사람이어야 해요. 디테일하게 나무 하나하나를 보기 보다는 전체 숲을 빨리 보는 사람이 적합하죠.”

그녀는 공연장에서 무대를 보지 않고 자꾸 객석을 살핀다. “관객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버릇 같아요. 앞으로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도 공연에 누가 왔는지, 내가 재밌어하는 만큼 관객이 많을 것인지 아닌지 꼭 예측해보세요. 예측을 한 다음에 티켓 예매사이트 들어가면 그 공연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죠. 내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자꾸 비교해보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연기획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다. 최후에는 제작자가 되겠지만 마케터도 있고 홍보 담당도 있고 프로덕션 매니저도 있는데 각각 조금 다른 자질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공통으로 정말 중요하다고 꼽는다.

“공연기획자는 수십 명, 수백 명을 설득하고 리드해야 해요. 그러려면 먼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함으로 신뢰감을 줘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당장 다음 주에 공연인데 공연이 못 올라갈 것 같은 위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이 있는 분들이 좋을 것 같고요. 세 번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공연기획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굉장히 다양한 전문가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꿈도 창작 뮤지컬을 성공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25년 동안 할머니와 손녀가 같이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라이온킹’처럼 아름다움과 철학과 감동과 재미가 있는 창작 작품을 꼭 만들고 싶어요. 그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도 받고 앞으로 30년 후에도 오리지널 프로듀서로서 그 작품과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사실 그 순간을 매번 꿈꾸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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